이상창씨, 10년 이상 방치 폐가를 카페로 변신시켜 골목의 결핍 채워
옥상서 공연·요가도 진행…또래들과 조합 만들어 관아골 살리기 앞장
[※ 편집자 주 = 저출산에 따른 인구 감소와 인구이동으로 전국에 빈집이 늘고 있습니다. 해마다 생겨나는 빈집은 미관을 해치고 안전을 위협할 뿐 아니라 우범 지대로 전락하기도 합니다. 농어촌 지역은 빈집 문제가 심각합니다. 재활용되지 못하는 빈집은 철거될 운명을 맞게 되지만, 일부에서는 도시와 마을 재생 차원에서 활용하는 사례도 늘고 있습니다. 연합뉴스는 매주 한 차례 빈집을 주민 소득원이나 마을 사랑방, 문화 공간 등으로 탈바꿈시킨 사례를 조명하고 빈집 해결을 위한 방안을 모색합니다.]
(충주=연합뉴스) 김형우 기자 = 충북 충주시 성내동 구도심의 관아골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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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세상상회 제공. 재판매 및 DB 금지]
이곳은 조선시대 충청감영이 있던 옛 충주읍성의 중심지다.
1970∼80년대에는 음식점과 옷 가게 등 각종 상점에 손님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던 번화가였지만, 신시가지 개발 이후 쇠퇴의 길을 걸었다.
밤이면 불이 꺼져 ‘담뱃골목’이라 불리며 우범지대로 인식되기도 했다.
하지만 몇 년 전부터 이 골목이 다시 활기를 띠고 있다.
주말이면 사람들로 붐비고 각종 공연이 열리면서 문화 중심지로 거듭나고 있다.
변화의 중심에 서울에서 온 청년 이상창(42) 세상상회 대표가 있다.
도시재생 컨설턴트로 활동하던 그는 암 투병 중이던 2018년 5월 아내와 함께 충주에 정착했다.
충주 전입 2년 전에 빈 점포 활용 관련한 충주시 도시재생 프로젝트에 참여한 것이 계기가 됐다.
몸도 마음도 지쳤던 그는 지방 소도시가 본인의 도시재생 경험을 접목해 생계를 유지하기가 더 낫다고 판단했다
이 대표는 “충주는 사과 외에는 특별한 이야깃거리가 없다고들 하는데, 저는 그게 오히려 기회라고 생각했다. 수도권에 비해 문화적 결핍과 빈틈이 많은 만큼 그걸 채우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봤다”고 회상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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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의 눈에 10년 넘게 방치된 빈집이 들어왔다.
곰팡이가 슬고 창문이 깨진 폐가였지만, 그 안의 가능성에 주목했다.
1945년에 지어진 일본식 가옥과 1970년대 한옥을 7천만원에 매입하고 리모델링을 해 카페 ‘세상상회’로 탈바꿈시켰다.
리모델링에 1억5천400만원이 들었는데 정부의 저리 융자 지원을 받아 부담을 줄였다.
돈을 많이 벌 수 있다는 확신은 없었지만, ‘빈집을 개조한 공간’ 그 자체가 강한 상징성을 가진다고 믿었다.
취미로 커피 제조 및 제빵 기술을 배워뒀던 부부는 젊은 세대의 감성을 자극하는 공간으로 꾸민다면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.
옥상은 소형 공연장으로 활용했다.
국악과 재즈를 포함한 청년 음악인들의 공연을 열고 요가 수업도 마련했는데 이 선택은 적중했다.
사회관계망서비스(SNS)에서 입소문을 타며 손님들이 몰렸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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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세상상회 제공. 재판매 및 DB 금지]
첫해 매출은 2억원대 초반이었고, 지금은 3억원 정도로 안정적으로 성장하고 있다.
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당시에도 매출은 크게 떨어지지 않았다.
세상상회가 문을 연 이후 관아골 골목에 변화의 기운이 감돌았다.
외지 출신 청년 창업자들이 하나둘 모여들며 골목에 활력이 생겼고, 관아골을 살리기 위한 ‘보탬플러스 협동조합'(현 보탬플러스) 설립으로 이어졌다.
현재 30여명의 인력이 카페, 숙박, 책방, 협동조합 등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며 골목의 결핍을 채우고 있다.
지난 5월 조합은 2년간 방치된 옛 염소탕집(330㎡)을 사들여 복합문화공간 ‘고티맨숀’으로 재탄생시켰다.
이곳에는 레스토랑, 책방, 문구숍 등 총 6개 협업팀이 입주했다.
월세는 20만∼75만원 수준으로 저렴하다.
서울 이태원에서 요리를 배우다 아내의 직장 이동으로 충주와 인연을 맺은 이탈리아 레스토랑 ‘핀치오살레’의 최효영(40)씨도 이 공간에 입주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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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김형우 촬영]
최씨는 직접 제도 샤프와 줄자를 들고 도면을 그려 12석 규모의 바 테이블 레스토랑을 꾸몄다.
최씨는 “마당을 공유하는 구조 덕분에 다른 매장과 자연스럽게 연결돼 시너지 효과가 크다”며 “억지로 꾸미지 않아도 낡은 건물 특유의 매력이 손님들에게 새로운 경험을 제공한다”고 설명했다.
고티맨숀 내부에는 옛 주인의 장부와 그림 등을 전시한 특별 공간도 마련돼 있다.
보탬플러스 박진영(45) 대표는 “염소탕집을 운영하던 어머님의 아들이 ‘어린 시절 이 공간에 대한 기억을 꼭 남겨달라’고 하면서 건넨 자료를 전시했다”며 “공간의 과거를 존중하고, 현재의 쓰임을 더하는 것이 도시재생의 본질”이라고 강조했다.
청년 창업자들이 모이면서 인구 2천300여명에 불과한 성내동은 연간 5만명이 방문하는 명소로 변모했다.
이 중 10% 정도는 유료 투어나 견학 프로그램을 이용한다.
이상창 세상상회 대표는 “애정을 갖고 운영하지 않으면 결국 다시 빈집으로 방치될 수밖에 없다”며 “골목이 언젠가는 또 다른 청년들의 놀이터가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곳을 키우고 있다”고 강조했다.
vodcast@yna.co.kr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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2025년10월05일 06시45분 송고


